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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베케트] 고도를 기다리며

by monan.stone 2016. 9. 10.

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누구 하나 얼씬도 않는군. 정말 견디기 힘든 걸.


아일랜드 출신으로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한 사무엘 베케트의 <고도를 기다리며>가 그리는 세계에는 목 매달기 딱 좋은 나무 한 그루, 잘 벗겨지지 않는 에스트라공의 구두, 그리고 생각하게 하는 블라디미르의 모자가 등장합니다. 의미없는 일상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운데 주인공들은 누군가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종결시켜 주길 바랍니다. 사실 그들이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. (블라디미르의) 모자를 쓰고 생각이란 걸 하면 신고 있던 (에스트라공의) 구두를 벗고 나무에 목을 매다는 것이지요.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모자를 벗었다 썼다를 반복하며 생각 자체를 피하고 에스트라공은 구두가 벗겨지지 않는다고 투덜대기만 합니다. 그리고 하염없이 나무를 바라보며 실체를 알 수 없는 고도가 오기만을 기다립니다.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막상 고도가 올까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. 두렵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쉴 새 없이 지껄입니다. 말을 하다보면 생각을 안 하게 되고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흘러가게 되죠. 그것으로 일단 오늘 하루도 무사히!가 되면서, 그들에게는 공포를 이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.



<고도를 기다리며>는 베케트가 프랑스가 나치에 함락된 후 레지스탕스를 지원하며 경험했던 내용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. 비씨 정부의 혹독한 탄압과 감시 속에서 레지스탕스를 돕기 위해 베케트가 한 일이란 보이스카웃 활동 정도였다고 회고하고 있듯이, 아마도 언제 붙잡힐 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며 희망과 미래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그 혼란스러운 상황이 끝나기만을 바라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. 아마도 수용소에서 하루하루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시간을 숨 죽이며 보내는 유태인들의 시간과 다를 바 없었겠지요.


사무엘 베케트사무엘 베케트


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관계는 언뜻 친구로 보이기도 하고 경쟁자이거나 자아의 분열된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. 어찌 됐든 그들 관계는 평등합니다. 여기에 지극히 불평등한 포조와 럭키의 관계가 있습니다. 춤도 출 수 있고 생각을 할 수 있는 럭키는 포조에게서 버림받을까 두려워 혹독한 노동 착취 속에서도 포조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. 그들의 불평등한 관계는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립니다. 그렇게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.


<고도를 기다리며>의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우스꽝스러운 일상의 반복은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가리기 위한 장치입니다. 그들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의해 구속되어 있고 그런 처지를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애써 숨깁니다. 그리고 그것을 ‘살아있음’으로 해석합니다.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곧 죽음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. 하지만 그들은 압니다. 언젠간 끝이 다가온다는 것을. 고도는 언제일지는 모르나 살아있는 우리가 맞이해야 할 죽음의 순간이기도 합니다. 


인간은 모두 미치광이로 태어난다. 그 가운데에는 끝내 미치광이로 끝나는 자들도 있다.


주체적인 생각이 결여된 인간의 무기력함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. 의미없는 일상의 반복은 시간을 파괴하고 그것은 곧 죽음의 상태를 보여줍니다. 습관이 우리의 귀를 틀어막고 오로지 고도만을 기다리라고 합니다. 하지만 고도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음을 우리는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. 두려움없이 고도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.


*** 한줄평: 실체없는 기다림 속에 파괴되는 시간 ***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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